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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카페의 주인, 민지와의 대화

카페지기
#인터뷰#카페#공간#사람

첫 만남

골목 안쪽, 낡은 간판 하나가 조용히 손님을 맞이한다. 카페 온기라는 이름처럼, 문을 열고 들어서면 따뜻한 공기가 감싼다. 오후 세시, 손님이 별로 없는 시간을 골라 10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는 민지를 만났다.

첫인상은 조용하고 차분했다. 커피를 내리는 손길은 능숙하면서도 정성스러웠다. 카페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창밖을 바라봤다.

처음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복잡하지 않은, 편안한 곳이요. 대학 졸업하고 회사 다니면서 항상 이런 공간을 찾아다녔거든요. 복잡한 프랜차이즈 카페 말고, 정말 쉴 수 있는 곳. 그런데 그런 곳이 의외로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했죠.

스물아홉의 나이에 퇴사를 결심하고 이 공간을 열었다고 한다. 주변에선 무모하다고 말렸지만, 지금 돌아보면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공간에 대하여

카페는 크지 않다. 테이블 다섯 개, 좌석 열다섯 개가 전부다. 하지만 각각의 자리마다 이야기가 있다. 창가 자리는 혼자 오는 손님들이 좋아하고, 안쪽 구석 자리는 오래 앉아 책을 읽는 이들의 자리가 되었다. 입구 쪽 긴 테이블은 노트북을 펼쳐놓고 작업하는 프리랜서들의 작업실이 되어준다.

손님들이 자리를 선택하는 방식을 보면 재미있어요. 어떤 분은 항상 같은 자리에 앉으시고, 어떤 분은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다른 자리를 고르세요. 처음엔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각 자리마다 성격이 생긴 것 같아요.

인테리어는 최소한으로 했다고 한다. 나무 테이블, 빈티지 의자, 벽 한쪽의 낡은 책장. 그것이 전부다. 복잡한 장식 대신, 자연광이 잘 들어오도록 창을 크게 냈다. 오후가 되면 부드러운 햇살이 공간 전체를 따뜻하게 감싼다.

음악도 중요한 요소다. 너무 크지 않게, 배경처럼 흐르는 재즈와 보사노바. 민지가 직접 고른 플레이리스트는 10년 동안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

10년의 시간

10년이면 많은 것이 바뀐다. 주변 건물은 새로 지어지고, 골목은 점점 조용해졌다. 카페도 여럿 생겼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카페 온기는 그대로다. 같은 메뉴, 같은 음악, 같은 분위기.

변하지 않는 게 제 장점인 것 같아요. 손님들이 언제 와도 똑같은 공간, 똑같은 맛을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트렌드를 좇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경쟁력이 되더라고요. 요즘 많은 카페들이 인스타그램용 인테리어를 하잖아요. 화려하고 자극적인. 저는 그 반대로 갔어요.

물론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특히 코로나 때는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손님이 거의 없었고, 월세를 내기도 빠듯했다. 하지만 단골손님들이 포장 주문으로, 선물권 구매로 도와줬다. 그때 정말 고마웠고, 이 일을 계속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메뉴도 처음과 거의 같다.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핸드드립 커피. 여기에 계절마다 바뀌는 음료 한두 가지. 디저트는 직접 만든 스콘과 쿠키 정도. 많은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 대신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사람에 대하여

민지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단골손님이 들어설 때라고 한다. 인사를 나누고, 주문을 물어보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그 익숙함. 그 순간만큼은 카페가 아니라 친구 집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어떤 할머니는 매주 화요일 오후 3시에 오세요. 정확히 3시예요. 한 번도 안 빠지고. 아메리카노 한 잔 드시고 30분 정도 계시다 가시는데, 그 시간이 할머니에겐 특별한 시간이라는 걸 알아요. 한 번은 제가 왜 매주 화요일이냐고 여쭤봤더니, 화요일이 남편분 기일이래요. 성묘 다녀오시는 길에 항상 들르신대요. 처음엔 슬펐는데, 이제는 그냥 할머니의 루틴이 되신 거죠.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다. 이곳에서 만나 결혼한 커플, 취업 준비하며 매일 와서 공부하던 청년, 이혼 후 매일 저녁 혼술하러 오던 중년 남성. 각자의 이야기를 안고 이곳을 찾는다.

민지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하지만 깊이 관여하지는 않는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필요할 때 곁에 있어주는 것. 그것이 카페 주인으로서 지켜온 원칙이라고 한다.

하루의 리듬

아침 일곱 시에 출근해서 준비를 시작한다. 원두를 갈고, 빵을 굽고, 테이블을 닦는다. 여덟 시에 문을 연다. 첫 손님은 보통 출근 전 커피를 사가는 직장인들이다.

오전에는 비교적 한산하다. 한두 명의 손님이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 점심시간 전후로 잠깐 붐빈다. 오후 세시쯤부터 다시 조용해진다. 이 시간을 민지는 가장 좋아한다. 햇살이 좋고, 손님도 적당하고, 여유롭다.

저녁 여섯 시에 문을 닫는다. 일찍 닫는 편이지만, 저녁 시간은 민지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남겨두고 싶다고 한다. 정리를 마치고 집에 가면 일곱 시 반쯤. 그렇게 10년을 보냈다.

앞으로

앞으로도 이곳을 계속 지킬 것이냐는 질문에, 민지는 웃으며 답했다.

글쎄요. 계획은 없어요. 그저 하루하루, 이곳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따뜻한 공간이 되길 바랄 뿐이에요. 확장할 생각도 없고, 프랜차이즈로 만들 생각도 없어요. 이 자리에서, 이 크기로, 계속하고 싶어요. 욕심 부리지 않고요.

은퇴는 생각해봤냐고 묻자, 아직 멀었다고 웃었다. 이 일이 좋고, 이 공간이 좋고, 손님들이 좋다고.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또 한 명의 손님이 카페 문을 열었다. 민지의 환한 미소가 그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와 함께. 오늘도 카페 온기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공간이 되어준다.